생각들: 짧은 글

아날로그로 돌아온 이야기

먹바 mugba 2022. 5. 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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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메모 노트를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썼던 종이 노트

아이패드를 구매하고 나에게 종이 필기는 3년 전에 명맥이 끊겼다. 그러다 우연히 3년 전 메모 노트를 찾았다. 특이하게 하드 커버 양장된 노트인데 책 같아 보였는지 책이 모여있는 곳에 꽂혀있었다. 디자인 아이디어, 낙서, 로고 스케치, 여행 일기, 업무 메모. 다양하게 적었었구나. 캘리그라피 촉을 끼운 만년필 획감이 느낌 좋다. 종이에 필기할때는 만년필을 사용했었다. 다시 보니까 새 책을 읽는 거 같다.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종이에 슥슥 쓸때가 아이디어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왼)다양한 레터링을 시도해본듯 / (오)어플 회사 인턴이었을때 스케치였던듯
(왼)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그렸던 낙서 / (오)홍콩 여행 갔을때 일기 중

필기감을 원하는건 본능

근래 모든 메모는 노션으로 하고 있다. 아이디어만 모아두는 페이지가 따로 있는데 예전만 못하게 쌓이는 수가 기간대비 적다는걸 눈치채고 있었다. 예전에는 정말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표현이 딱 일 정도로 퍼날라들어왔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아이디어 메모에 는 알맞은 메모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 인생의 중요한걸 하나 깨달은 것 같다. LED 위가 아닌 종이 위에 사각사각 쓰는게 지금 인간에게 더 적합하다는 것을. 인간 본성에 디지털이 내재 되기까지 만년은 더 걸릴 것이다. 종이 펄프 질감, 획 끝에 고인 펜 잉크, 사각사각 쓰는 소리, 촤르륵 펼치는 생동감, 종이와 잉크 섞인 향. 모두 아이디어에 아이디어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는 원동력이다. 아이패드에 종이 필름을 붙이고 paper_texture.png 위에 유료 프로크리에이터 브러쉬로 쓴다고 해도 절대 따라올 수 없다.

새 노트에 새 만년필로 다시 종이 메모

다시 종이 메모로 돌아가겠다는 위 생각은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누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면 자기 옛날 노트를 그 자리에서 다 넘겨보고는 그대로 다이소로 직행한 내 모습을 봤을거다. 왜 다이소로 직행했냐 하면 만년필을 사러갔다. 종이에 필기할때는 만년필이 아니면 손이 즐기는 재미가 없다. 다이소 만년필을 검색해보니 라미 만년필과도 견주어 볼 수 있는 제품이 있다고 한다. 다이소가 미쳤다는 문장을 보고 바로 출발했다.

가볍고, 저렴한 느낌 없고, 슥슥 잘나온다! 추천!

내가 선호하는 무채색이나 한색 계열은 없어서 아쉽게도 빨간색으로 샀다. 다행히 잉크는 평범히 검은색이다. 노트는 따로 사지 않았다. 종이 노트 그 옆에 안쓴 노트가 하나 있었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책을 샀을때 부록으로 받았던 백지 노트다. 특이하게 소프트 양장본이라서 바로 알아봤다. 만년필에 카트리지를 딱 소리나게 끼우고 한 획을 그어본다. 책 봤던 블로그 리뷰대로 아주 잘 써진다. 슥슥 매끄럽게 써지는 펜 느낌이 오랜만이다. 집에 필기구라고는 샤프 하나 밖에 없었어서 정말 종이에 뭘 쓰질 않았구나 싶었다.

NEW 2022년 첫 종이 메모

펜으로 쓰고, 자판으로 쓰고

종이 메모를 하면서 디지털 메모, 노션 역시 바로 버리지 않고 같이 사용했다. 2일 간 아날로그와 디지털 메모를 해보고 결론 내렸다.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나 디자인 아이디어 메모, 스케치는 종이 노트에 한다. 데이터화가 필요한 예를 들면 스케쥴 관리 같은거나 레퍼런스 수집 같은건 디지털로 한다. 너무 모든 나의 것을 디지털로 정리했었다. 한때 단짝이었던 약간 세상 돌아가는데 느린 친구를 차게 돌아서고 엄청 똑똑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엘리트에 트렌드 업데이트가 빠른 친구와 단짝 생활을 오래하다가 다시 순박했지만 느린 친구한테 연락한 느낌이다. 다행히 사람이 아닌 종이라 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둘 다 장단점이 있으니 좋은 점들만 취해서 쓰면 된다. 무조건 편리해보이고 만능처럼 보이는 것도 못해내는게 있다. 나는 왜 둘 중 하나만 써야한다는 양자택일의 닻을 내린걸까? 도르래를 올리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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