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긴 글

디자이너 명상록: 회사를 다니며 알게된 것

먹바 mugba 2021. 12. 6. 10:04
반응형

2년 6개월 간의 회사 생활 동안 습득한 것.

마케팅 에이전시 디자인팀에서 2년 6개월간 업무하면서 배웠고, 알게 되었고, 습득한 것들입니다.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퇴사 직후 기억을 적은 글 입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직장인분들도 내용에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1. 나를 소중히 하자. 나를 무엇보다 제일 소중히 하자.

제일 중요한 1계명. 일 보다 삶을 중요하게 여겨야하는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 나는 저 먼곳에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이 우선순위를 머리 위로 끌어올려 0순위로 만들고 순서를 다시 정해봅니다.

2. 내가 틀리고 다른 사람이 맞을때 인정하고 칭찬하자.

내가 성인(聖人)은 아니기에 내가 옳지 못한걸 인정하기 싫은 감정이 올라올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감정을 빠르게 식히거나(내가 말하는 순서가 되기 전에, 아주 빠르게)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상대를 칭찬하거나 '내가 틀린게 맞아서 열받는다ㅋㅋㅋ 미안해.'식으로 상대에게 아예 내 감정을 날것 그대로 말해버리는 방식으로 해소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중 이 포인트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3. 대충, 빨리, 그럭저럭 괜찮게 디자인을 뽑아내는 능력이 생겼다. 에이전시에서는 단가, 즉 소요 되는 시간과 노력과 퀄리티를 의도적으로 낮춰야할때를 인지하고 프리셋 소스를 다량 활용해 빠른 시간에 고퀄리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에이전시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최고 견적에 주어진 시간도 넉넉하면 얼마나 좋을까요?(이것도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퍼즐을 조합하는 듯한 일만 반복되는 시기에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점점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면 적은 자원으로 최대한 창의적으로 작업하는 나만의 방식도 생기게 됩니다. 능숙함이라는 감각을 알게됩니다.

4. 하루에 소화 가능한 업무량을 감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최대한 정확하게 일정을 설계해야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파악하는 법은 수많은 디자인 일정 수정, 취소, 딜레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제 경우 9 to 6 업무시간 기준, 하루에 큰 업무 2개까지 여유롭게 소화 가능합니다. 추가로 2~3개 정도 자잘한 업무까지 아슬아슬하게 칼퇴할 정도로 수행 가능합니다. 크다 작다 규모 기준은 시간과 확실성으로 정합니다. 예를 들어, 큰 업무는 약 3~4시간 정도 소요되며 예상 되는 변수가 허용 범위 내인 경우로 기준을 정합니다.

5. 검토, 검수는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실제로 그 자료를 토대로 업무한다고 생각하고 꼼.꼼.히. 확인하기.

다른 팀에게 자료를 넘길 때나 후임이 끝낸 작업을 검토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작정하고 마이크로 단위로 검수하면 0에 가깝게 오류를 잡을 수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시간이라는 제약에 부딪힙니다. 이때, 실제 작업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검수하면 최대한 치명적인 실수는 줄일 수 있습니다.

6. 나만 아는건 나만 알지 말고 관계된 커뮤니케이터들한테 바로바로 질문하고 알려라.

아주 사소한거라도 꼭! 질문하고 꼭! 알려주기! 묵언은 커뮤니케이션이 꼬이는 주범입니다. 정말! 정말로!

7. 일정, 약속 관련된건 꼭 기록해서 잊지 않는다.

회의 중 생긴 약속, 채팅 중 생긴 약속, 슬랙 스레드로 이야기하면서 생긴 약속, 자리로 와서 이야기하면서 생긴 약속. 모두 즉시 메모해서 절대 잊지 않고 내 스케쥴에 추가합니다. 내가 주최한 약속 또한 잊지 말고 상대가 답변이 없으면 리마인드 해줍니다.

8. 파일 네이밍을 잘하자.

작업 중에는 아직 파일트리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될지 알수 없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네이밍을 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파일명 양식을 미리 정해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ex. '프로젝트명_파일이름_디자인종류_버전명_날짜.ai')
급하게 작업하면 어쩔수 없이 마구잡이로 네이밍 될때가 많습니다. 바쁜게 좀 가시면 그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바로바로 네이밍을 다시 해주는게 어떻게 작업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때 정리하는 것 보다 훨씬 낫습니다.

9. 파일 정리를 제때제때 잘하자. 이전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 작업 파일에 소스 파일이 링크가 안되어있는 경우에는 정리하기도 힘들어진다.

디자인 작업하면서 잊기 쉬운 3대장.

  1. 일러스트레이터 - 연결파일 포함된 링크 만들기
  2. 포토샵 - 클라우드 에셋 로컬 에셋으로 만들기(클라우드 연결 끊기)
  3. 에프터이펙트 - 푸티지 포함 저장(*에펙은 무조건 처음부터 폴더 정리 잘하기. 오류가 잘나서 에셋 연결 끊기면 죽음 뿐.)

그리고 파일트리 양식을 미리 정해두면 어떻게 폴더 정리 할지 신경 덜쓰게 되어서 편합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양식으로 파일트리를 만들어두고 폴더 삭제・수정・추가를 더해나갔습니다.

*프로젝트 기준 폴더 생성 규칙

*공통 소스: 프로젝트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에셋, 텍스처 등 파일 보관.
*작업원본파일: 작업 수정이 가능한 ai, psd, xd, fig 파일 등 보관.
*피드백자료: 관련 기획 자료나 레퍼런스, 수정 요청 문서 파일 보관.
*export파일: 이미지/영상으로 추출된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작업물 파일을 보관.

10. 상황은 무조건 나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든다.

같은 말을 해도 밉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라도 더 주고 싶게 말하는 사람이 있듯이 처세술도 중요하다는걸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속에 있습니다. '처세술 보다는 객관적인 성과가 우위'라는 마인드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성과는 평균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평균 '이상'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주관적인 자기PR이 필요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주관식이었습니다.

11.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는걸 인지하게 만들어라.

숙련 되어 체화된 일은 당연히 일반인보다 월등히 빠르고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작업자인 우리 조차도 그 쉽다는 착각에 속아 '그거 쉬워요.'라고 은연 중에 걸러 말하지 못해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가치 있는 일을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의 가치도 폄하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전체를 위해서 내 커리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합니다.

12. 말, 글로 설명하는것 보다 스케치로 보여주는게 더 빠르게 이해시킬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시각적이다. 시각물로 보여주는게 이해가 가능한 영역도 있다.

결과물이 시각적으로 나오는 디자인의 경우 특히 많았던 케이스입니다. 아이디어를 말로 팀원에게 설명할때 한번에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때의 답답함. 그럴때 마다 안되겠다, 하고 꺼내드는 것이 노트입니다. 아주 간단한 스케치로도 100번 말한 것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99%입니다.
'설마... 요거 설명하는데 스케치까지 필요하겠어?'라고 생각이 들면 결국 노트를 꺼내오게 되었습니다.


디자인팀, 마케팅팀, 개발팀으로 이루어진 출퇴근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팀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편이라서 타팀원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하는지를 배워나갔던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일 했으면 절대 몰랐을거라 경험하게 되어 축복입니다. 지금도 많이 미숙하지만 첫 환경이 좋았던 것 같아서 약간 안도하게 됩니다.

퇴사 후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어떤 길로 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배웠던 것은 잊지 않고 매번 떠올리면서 그때그때 나를 긴장시켜야겠습니다. 혼자가 된 지금은 그런 긴장감이 많이 필요하네요.

반응형

'디자인: 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자이너를 위한 Ted 강연 걸작선  (0) 2022.06.09